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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통계시, 뒤틀린 성령의 음성을 경계하라
                      직통계시, 뒤틀린 성령의 음성을 경계하라

예수를 믿고 기도 생활을 시작하며 성령의 직통계시를 추구하는 이들이 있다. 의외로 많은 이들이 자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 감동 등을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주께서 내게 말씀하셨다’는 말로 서슴없이 표현한다. 우리는 이런 표현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첫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계시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특별계시가 결정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특별계시 외에 다른 시시콜콜 한 정보들을 우리에게 특별히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고 가르치신다(요14:26).

성령은 스스로, 자의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말하며 장래 일을 알리실 것이다(16:13). 여기서 장래 일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십자가와 부활 즉 구속사역을 말한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신자들에게 알리시는 분이며, 자신의 영광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만을 나타내시는 분이다(16:14).

둘째,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말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만이 사용할 수 있었다.1) 만약 우리가 이런 표현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기록된 특별계시인 성경 말씀을 전할 때 한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성경 외에 다른 말을 하면서 주님이 말씀하셨다고 하는 것은 성경 외의 다른 거짓 계시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셋째, 마음속에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것을 말하는 것은 주님의 음성이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을 가르치는 일부 단체, 예언을 가르친다고 하는 단체들에서는 하나님 음성을 듣는 법을 훈련한다고 하면서 함께 모여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 환상들을 취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짜 맞춘다. ‘내게 이런 것이 보입니다’라고 하며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분별없이 쏟아 낸다.

때로는 이런 것이 맞아들어 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틀리기도 한다. 하나님의 음성이 확률적으로 임하는 것 같다. 상태가 좋을 때는 정확하게 임하는 것 같고, 기도자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미혹하는 영이 장난을 치는 것 같다. 하지만 엄중한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에 이렇게 즉흥적인 것들을 통해 역사하지 않는다.

넷째, 마음이 예민한 이들, 영적인 것에 민감한 이들은 마음에 일어나는 다양한 환상과 음성을 좀 잠재우고 스스로 제지시킬 필요가 있다. 내면에서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것은 성령일 수도 있지만, 나의 또 다른 초자아일 수 있고, 내 안에 불안을 느끼는 또 다른 인격일 수도 있고,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더러운 귀신의 영일 수 있다. 이런 것을 따라가다 보면 말씀에서 벗어나 체험 위주의 해석을 내리기 쉽다.

만약 꼭 필요한 음성, 꼭 필요한 환상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붙잡으려고 예민하게 나서지 않아도 하나님이 들려주시고 보여 주실 것이다. 그러나 가능한 내 안에 역동적으로 일어나려는 이런 영적 반응을 절제시켜야 한다. 교회에 이런 소위 말하는 ‘신기(神氣)’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문제는 이런 신기가 나타나면 종종 누구의 통제도 받기를 거부하고 마치 자신이 들은 음성, 자신이 받은 환상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인양 교만하게 떠들고, 나아가 이것으로 사람들을 겁박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들은 공동체 내에서 절제하라고 해도 절제하지 않는다.

다른 영에 의해 제지받지 않고 마치 자신이 절대적인 것처럼 말한다(고전14:32). 마음에 무엇인가가 즉흥적으로 떠오르면 일단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면서 무아경 가운데 방언으로 기도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떠든다. 이런 상태라면 이제는 정신을 차려라! 온전한 정신으로 말하라! 그리고 공동체의 제재와 분별을 받아라!

다섯째, 하나님의 음성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예언의 은사는 덕을 세우고, 권면과 위로를 위해, 또 숨은 죄를 드러내기 위해 성령께서 사용하시는 도구였다(14:3, 25). 만약 하나님의 음성이 성경에 없는 내용을 말씀하시고, 다른 사람이 궁금해하는 사업상의 문제 해결,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 앞에서 동쪽으로 갈지 서쪽으로 갈지를 알려 주고, 언제 가야 하는지 날짜를 알려 주는 계시라면 그 내용은 점쟁이의 계시와 다를 바 없다.

여섯째, 하나님의 음성은 공동체와 성경에 의해 분별되고 절제되어야 한다. 고린도 교회에서 행해졌던 예언의 은사는 개인적 은사가 아니라 두세 사람에 의해 분별되고 제지받는 공동체적 은사였음을 기억해야 한다(고전14:29). 이는 인간의 예언이 때로 오류가 있고 실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고린도 교회에 나타났던 예언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과 동등한 권위를 갖지 않았다. 오늘날 예언이 갖는 위험성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보다 예언을 말씀 이상의 권위로 두고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단체에서는 ‘예언학교’라는 이름으로 예언을 훈련시킨다. 상대방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시는 영감을 구한다. 그리고 그 감동을 따라 그 사람의 상태에 대해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을 말한다. 이렇게하면 처음에는 20~30퍼센트의 확률로 맞던 것이 훈련을 거듭할수록 점점 정확해진다고 한다. 그러다 70퍼센트의 확률까지 오르면 예언의 은사가 발휘된 것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위험하다. 때로는 오류가 있는 예언을 따라가다 어려움을 겪고 큰 충격과 시험을 겪기도 한다. 우리는 우리가 의지하는 것에 지배를 받는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보다 예언에 더 의존하게 되면 예언자의 오류와 부패를 통해 역사하는 거짓의 영이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일곱째, 하나님의 음성은 소망과 회복을 위한 것이지 저주를 위한 것이 아니다(렘29:11). 불균형한 성령 사역에 치우쳐 있는 단체일수록 성경을 제쳐 두고 예언 사역에 몰두하는 경향이 많다. 예언의 내용도 종종 성도를 겁박하며 이 교회를 떠나면 저주받고, 구원받지 못한다는 식의 억지 주장인 경우가 종종 있다. 심지어는 구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부모와 처자식, 남편도 돌보지 말고 갈라서라’는 예언도 서슴지 않는다(참조 눅14:26). 가정의 회복이 아니라 도리어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만약 성경 말씀을 작위적으로 인용하며, 여기를 떠나면 저주받는다는 예언을 종종 듣는다면 매우 주의해야 한다.

박영돈은 그렇기에 예언은 교회를 허무는 미혹의 영이 가장 교묘하면서도 무섭게 역사하는 영역이며 교회를 최악의 혼돈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2) 따라서 예언을 무조건적으로 선포하고 여과장치 없이 받아 들일 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 같이 반드시 교회와 성경의 검증을 받을 필요가 있다.

여덟째,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 풍성함을 자각해야 한다. 오늘날 우리는 믿음의 선조들이 갖지 못했던 온전한 신구약 66권의 말씀을 다양한 역본으로 소유하고 있다. 우리는 신구약의 말씀을 지금보다 더 깊고 넓게 파야 한다.

이 말씀이 부족하여 신상 문제 해결을 위하여 부가적인 음성과 예언을 쫓아다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최종적인 특별계시인 이 성경을 보다 깊이 알고 깨닫기 위해 힘써야 한다. 성경을 붙들고 씨름 할 때 엘리야에게 임했던 세미한 성령의 음성이 들릴 것이다(왕상19:12).

이 음성은 크고 우렁차고 화려하고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충격적인 음성이 아니다. 세미하고도 수줍게 우리를 일깨우시는 성령의 음성이다. 또한 교회 강단에 선포되는 말씀에 열심으로 귀 기울이라. 공동체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교회 강단에서 말씀을 선포하면 성도들 중에 누가 내 사정을 목사님께 일러바쳤냐고 하며 어쩌면 내 사정을 그렇게 정확하게 알고 말씀하시는지 모르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의 백성들에게 교회를 통해 여전히 그분의 음성을 들려주고 계시다.

이 계시는 성경 외의 특별한 계시가 아니다. 성경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특별하게 적용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다. 따라서 리는 직통계시를 추구하기보다 말씀을 통한 계시를 추구해야 한다. 말씀을 통한 감동, 말씀을 통한 깨달음, 말씀을 통한 결단, 말씀을 통한 순종이 우리에게 있어야 한다. 이럴 때 우리는 바른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갈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박영돈, 《일그러진 성령의 얼굴》, 32.

2) 위의 책, 37.


✽ 이 글은 『바이블 백신2』(홍성사)의 내용 중에 ‘직통계시, 뒤틀린 성령의 음성을 경계하라’(pp.162~167) 부분을 저자 양형주 목사의 허락을 받아 발췌 및 요약하여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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